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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같은 말 다른 느낌, 다른 말 같은 느낌

by 탐탐이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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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나라에서 회의가 열렸다.인간을 대상으로 동물권리주장 발표회에 나갈 유망한 발표자를 선출하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청중이 성질이 변화무쌍한 인간이다 보니 좋은 발표자를 뽑아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당연히 목적은 동물들의 먹을 권리와 가죽 보호,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사건을 다루고 대책 마련과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9마리 후보 동물 중에서 가장 지식이 많은 동물은 원숭이이며, 말을 제일 잘하는 동물은 뱀, 신뢰도가 높은 동물은 황소다. 그렇다면 누가 인간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까? 누가 인간을 공감 넘치게 설득할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지만 대략 합리적인 발표자는 개라고 볼 수 있다. 개는 인간이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동물이고, 지금까지 충성을 다해왔기 때문에 청중인 인간이 한 번쯤 경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쌓아온 공감과 신뢰성은 전달을 넘어 충분한 호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개가 너무 말을 못하거나 놀란 눈으로 발표 무대에서 얼음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발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별 발표를 하는 경우에 발표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가 그 조의 성적을 좌우하게 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두 가지 역할을 기준으로 발표자를 선정한다. 우선 발표자는 청중들이 내용을 잘 이해하도록 하는 전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전달자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횡설수설하거나 발표내용을 스스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불합격이다. 따라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이 요구된다.

 

두 번째 기준은 공감 촉매자의 역할이다. 공감은 발표내용 그 자체의 전달 여무보다는, 전달이 쉽게 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공감 촉매자에게 요구되는 속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발표자에 대해 청중이 느끼는 '호감'이다.

외모, 신체적 매력, 화법, 특이 경력, 패션, 몸짓 등이 호감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발표자를 선정할 때는 마음속으로 이런 점을 고려하게 된다.

 

효과적인 설득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는 전달자보다는 공감 촉매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달자는 미리 만들어진 파워포인트 등의 도움을 받아 발표 원고를 충실히 재현할 수 있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질의응답을 위해 배석자가 있다면 발표자의 부담도 줄어든다. 또한, 전달자의 기본능력도 높은 교육수준, 지식과 경험의 채널 다양성, 과학적 사고의 확산 등으로 많은 사람이 갖추게 되었다. 즉 이제 발표에서 전달자의 역할을 잘 하느냐 못 하냐의 개인차는 점차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공감 촉매자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보다는 '어떻게 말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춘 평가기준이 정착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가'는 주제와 키워드에 따른 내용을 고민하면 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는 사정이 좀 복잡해진다.

 

우선 '어떻게'에는 누구를 통하여 전달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고, 어떤 메시지, 스토리, 패션, 몸짓, 동선 등, 결정해야 할 요소들이 계속 꼬리를 물게 된다. 여기에 어떤 슬라이드웨어(파워포인트, 키노트, 프레지 같은 발표용 프로그램), 템플릿, 그래프, 색상, 폰트, 조명의 밝기, 마이크의 음량, 배경음악, 청중의 좌석배치 등이 포함되면 그야말로 하나의 무대예술이 오나성될 정도가 된다.

 

만일 연극 무대에서 주연 배우가 연기한다면 청중은 그의 패션, 분장, 조명, 세트를 모두 그가 완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스텝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발표장에서 청중은 지금 보고 느껴지는 모든 것은 발표자가 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발표자는 감독이자 배우이며 스텝인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발표자에 대한 호감을 결정하고 이 호감이 발표내용 평가로 이러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청중들이 기대하는 발표자 유형은 전달자가 아닌 공감 촉매자 쪽에 가깝다. 청중 자신도 이미 현실에서 충분히 전달자 역할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달자 역할에만 충실 하려는 발표자는 그만큼 청중의 마음속에서 점수를 잃고 시작하게 된다. 또한, 놀라운 내용이 아니라면 그 점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높아지기보다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연예인들이 '콘셉트'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발표자에게도 '콘셉트'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연예인이 독설로 무기로 한다면 말투, 표정, 패션과 분장, 자리배치, CG, 자막도 여기에 맞춰서 방송이 진행된다. 청중은 발표자가 어떤 콘셉트로 자신을 연출하고 마케팅하는지를 주목한다. 그런 면에서 발표는 일종의 설득을 위한 쇼라고도 할 수 있다. 

 

발표의 귀재라 불렸던 스티브 잡스는 2시간 남짓의 신제품을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6개월 동안 자료를 준비하고 연습에만 3주를 투자하면서, 주머니에서 제품을 꺼내는 동작에서부터 유머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연출했다고 한다.

그는 전달자가 아닌 공감 촉매자로서 발표가 '설득적 쇼'라는 것을 미미 간파한 것이다.

 

어떤 콘셉트의 발표자인가에 따라 청중의 감정 반응도 달라진다. 유머러스하다면 별 이야기가 아니라도 그 말투나 표정으로 웃음을 자아낼 수 있으며, 진지한 콘셉트라면 진실한 이야기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건방진가, 친절한가, 톡톡 튀는가, 신중한가, 친근한가, 권위적인가 등의 발표자 콘셉트에 따라 청중은 미리 각각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발표를 듣는다. 유머 콘셉트라면 '아, 재미있겠다. 많이 웃을 수 있겠다.'라는 아음, 톡톡 튄다면

'오! 신선하겠는걸. 새로운 게 많겠네.'라 하고, 친근하다면 '어려운 말은 안 하겠지. 편안히 들어야지.'라는 마음가짐이 생겨 나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진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발표가 시작되면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본연의 성격이 드러난다면, 극적인 호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도 일종의 '대조 효과'를 이용한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청중은 발표자에게 전혀 유머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외성을 노린 유머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큰 웃음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발표자에 따라 반응이 다른 것은 청중의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다. 현명한 발표자라면 현재 자신이 전달자 역할에 충실한지, 아니면 공감 촉매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 가은 말도 다르게, 다른 말도 같게 만드는 공감 촉매자가 되려면 공감에 대한 관심과 함께 스스로의 매력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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