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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내면의 지각에서 심리학의 근거를 찾다

by 탐탐이 2022.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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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명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각'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감각을 '외감'과 

'내감'으로 구분했다. 위에서 말하는 지각은 내면을 살피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내감이다. 외감은 외부 사물에 의해 촉발되는 감각이다. 우리가 흔히 시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이라고 부르는 감각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사물의 크기나 움직임, 소리와 온도, 냄새 등을 구별한다. 외감에 의한 직관은 경험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면이 강하다. 이에 비해 내감은

마음에 의해 촉발되는 감각이다. 내면의 재료, 즉 상상력이나 향수처럼 마음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대상으로 한다. 마음에서 일정한 여과를 거친 재료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외감보다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내가은 단기적이드 장기적이든 기존의 경험과 닿아 있기 때문에 신체의 감각과 일정하게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영화에 등장하는 기상천외한 괴물이나 외계인도 온전한 사상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들의 특징을 과장하거나 조합한 모습에 가깝다. 이는 상상력과 연관을 갖지만 경험적 감각이나 의식과 무관한 활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꿈을 생각해보자. 꿈은 수면 상태에서 접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신체적 감각의 결과가 아니다. 잠결에 어떤 물건을 만지거나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꿈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외부 사물이나 현상을 감각으로 접하는 과정, 혹은 이에 기초하여 남의 질서나 법칙을 찾아내는 지성적 사고는 객관적이다. 하지만 꿈꾸는 상태에서는 상상력이나 향수 등이 작용하고,

어떠한 규칙도 도출할 수가 없기 때무에 즉흥적이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칸트카 보기에 꿈은 외감이나 내감과 무관한, 나아가 의식과 무관한 작용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설명한다. 소년 시절 놀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 칸트는 물에 빠져 빙글빙글 돌며 가라앉다가 거의 익사하는 꾸믈 꾸었다. 하지만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것도 잠시, 이내 더 편안한 잠에 들었다고 한다.

 

생각해보건대 이는 잠에 들었던 어느 순간에 자세가 불편해 지면서 가슴 근육의 활동에 지장을 받고 호흡 작용이 지체되면서 생긴 현상일 수 있다. 신체 감각이 상상력을 자극해 꿈이라는 형식으로 악몽을 초래한 것이다. 다시 자세를 바꾼 후에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었으니, 이로써 감각에 의한 지각과 꿈은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가위눌림도 비슷한 경우다. 근육이 긴장해 혈액의 흐름에 정체가 빚어지면서 생긴 육체적 고통은 허깨비나 꿈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대부분의 꿈은 아주 곤란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반응하도록 꾸며놓은 자연의 작용이다. 비록 신체 감각이 직접 의식에 작용하지는 않지만, 감각은 꿈이라는 매개를 거쳐 위험에 대한 능동적이고 유익한 반을을 이끌어낸다. 꿈이란 일종의 변형된 의식 활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리 현상을 실체가 없는 허무맹랑한 상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심리학의 견지에서 보면 흔히 '영혼'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내적인 감각 기관으로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감각하고 사고하는 순전한 능력으로 나타나는 마음이기에 인간 안에 내재하는 특수한 실체로 간주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심리학이 독립적으로 성립할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칸트에 의하면 내감의 작용에 의한 심리 현상은 비록 의식 활동의 일환이기는 하나, 이성의 작용에 비해 열등하다.

내감에 의해 촉발되는 사고는 감성적 인식에 속한다. 칸트는 경험적 감각에 의한 재료를 기반으로 하되 순전한 사고만을 담는 지성적 인식능력을 상위 인식능력으로 파악한다. 반대로 감성적 인식능력은 하위 능력으로 구분한다. 칸트에게 심리학은 지성적인 인식에 비해 질서나 규칙이 취약하다는 점에서 하위 인식능력과 연관을 맺는다.

 

칸트에 따르면 상상력을 비롯한 내감은 주관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판단에 기만을 초래하기도 한다. 작위적인 기분으로 자신을 속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마음의 변조는 이성에 의해 적절하게 제거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감은 정신의 저급한 부분이다. 칸트는 신체 감각과 이성에 기초하는 지성적 인식으로 되돌아가야만 명료하고 질서잡힌 의식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 마음의 병에 대하여

       - 우울증이나 광기 같은 마음의 병은 왜 생기는가? 칸트에 의하면 우울증은 밤의 정적 중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여 마음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지극히 사소한 마음의 현상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상태라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지나갈 만큼의 아주 작은 증상이 너무나 크게 생각되기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진다. 마음의 안정이 허물어지므로 일상적인 판단에도 지장이 생기고 밤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칸트에 따르면 우울증은 육체의 증상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심리 현상이 그러하듯이 상상력이 매개로 작용한다. 우울증은 신체의 질병을 상상하고 이를 과도하게 걱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물론 환자 스스로도 필요 이상의 상상이 문제라는 점은 안다. 하지만 그 상상에 현실성이 있다고 여기는 마음을 떨치지 못하는 데서 우울증이 자라난다.

 

한편 광기는 망상으로 인한 정신착란을 가리킨다. 이는 공상에 빠지는 정도가 격정적이어서 예기치 않은 발작으로 나타난다. 워낙 돌발적이고 불규칙한 발작이기에 통제가 되지 않는다. 광기는 우울증과도 일정한 관계를 갖는다. 우울증은 그 자체로서는 광기가 아니라 불행에 대한 순전한 망상이지만, 언제든지 광기로 도달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기분의 갑작스러운 전환은 착란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칸트가 진단하는 마음의 병은 신체 질병의 직접적인 반영은 아니지만, 과도하게 그러니 마음의 병은 간접적인 차원에서 신체적 증상이나 감각과 관련이 있다. 또한 지성적 인식에 비해 열등한 심리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다. 칸트가 보기에 우울증이나 광기는 모두 경험에 의한 객관적 관찰을 소홀이 하면서 생기는 상상력의 비정상적 분출이기 때문이다.

 

지각에 의한 내적 경험에서 심리 현상의 근거를 찾는 칸트의 명제는 심리학을 독자적인 분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하지만 심리 현상을 감각에 기초한 지각과의 연광성 안에 가둔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여전히 의식의 틀 내에서 모든 정신 현상을 설명하니 말이다. 이런 바탕에서는 독립적인 무의식 영역이 설 자리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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