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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불의 역사가 보여주는 심리적 기초

by 탐탐이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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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의 응시가 불러일으키는 몽상은 또 다른 면에서도 원초적이다. 불은 이성적 사고보다는 인간이 본래 지니는 본능과친숙하다. 평소에 이성적 사고방식 아래 억눌렸던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일깨운다. 이 욕구는 식욕이나 수면욕과 다르다. 불꽃을 응시하면서 공복감이라든가 식탐을 자극받지는 않는다. 수면욕이라면 응시가 아니라 오히려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싶을 테니 이 역시 해당 사항이 없다. 불꽃의 응시와 가장 친근성이 있는 본능은 성욕이다. 불꽃을 응시하면 사랑의 감정이 잔잔하게 올라온다. 문화인류학자들의 관찰에 희하면, 원시부족은 밤에 모닥불을 주위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다 서로의 짝을 구한다. 서로의 마음과 욕구가 통했다고 느끼면 들떠서 숲으로 향한다. 이는 우리의 경험으로도 확인된다. 여름 바다나 캠핑장에서 모닥불 주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상대 여성이나 남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솟은 경험 말이다. 이처럼 불은 엄격한 도덕의 매듭을 느슨하게 하고 사랑 감정이 흐르게 한다. 무의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본능적 욕구가 수면 위로 떠오르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원시사회에서 처음으로 불을 만들도 다루기 시작하던 때부터 성적인 요소는 깊숙하게 개입된다. 우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원시인들이 마른 나무토막을 비벼댐으로써 불을 만들었다고 배운다. 그리고 보통 숲속에서 여름이나 가을에 바짝 마른 나무가 쓰러지면서 다른 나무와의 마찰에 의해 산불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원시인들이 응요하게 되었다고 배운다.

 

이는 마찰에 의해 열이 발생한다는 과학적 지식에서 출발하여, 가는 나무를 오목한 표면을 지닌 나무에 비비면 불이 생긴다는, 또 다른 과학적 지식으로 연결하는 추론이다. 과하겡서 다시 과학으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과연 원시인들이 산불이 났을 때 침착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관찰했을까? 동물은 큰불이 일어나면 공포에 떨며 도망가기에 바쁘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서지 않았을까?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임을 받아들인다면, 문제는 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과학적 지식 이전의 사고를 밝히는 일이다. 본능에서 출발하는 자연발색적 사고 말이다. 여기에 담긴 심리적 요인을 밝히지 ㅇ낳으면 이미 인간은 과학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는 허무한 결론으로 끝난다. 나무를 비벼 불을 만들어내는 일은 누구나 금방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꽤 오랜 시간 숙달된 동작이 요구된다. 마른 두 토막의 나무가 원시인의 손에 쥐어졌다고 해서 금방 재빠른 손놀림으로 연결하기는 어렵다. 심리적으로 어떤 내적 동기가 있어야 집요한 반복 동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슐라르는 이를 성적이 동기에서 찾는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리학적 설명을 하면, 바로 성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마찰에 의해 불은 만드는 객관적 시도는 내적인 경험에 의해 시작된다. 산불은 본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에서 불을 목격하는 것과 이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행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심리적 동기와 몸에 익은 습관이 있을 때 비로소 차이가 메워지고 둘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원시부족 신화를 통해 뒷받침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부족 신화에는 불을 만드는 동물이 등장한다. 그 동물이 어ㅏ떻게 불을 만드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은 수놈의 생식기를 뜯어 둘로 갈라 붉은 불을 발견한다. 다른 부족의 신화에서는 여자들만이 불을 다루는데, 남자들이 불에 대해 알지 못하도록 불씨를 자신의 음부에 감춘다. 남아메리카 신화에서는 영웅이 불을 얻고 한 여자를 추적한다. 불의 비밀을 밝히지 않으면 약탈하겠다고 위협한다. 신화들은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심리와 행위가 점차 비유로 옮겨간 과정을 보여준다. 원시부족의 신화는 이제 더 이상 현대인에게 남아 있지 않지만, 불꽃을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몽상으로 이끌리는 심리는 남게 되었다. 그렇게 불을 매개로 한 몽상은 우리를 의식 이전에 대한 관심으로, 자신의 심리를 구성하고 있는 뿌리에 대한 사고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개인의 심리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준다

개인읫 ㅣㅁ리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심리적 요소를 고려하면 현대사회의 특징을 정확히 히해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 문제가 있다. 바로 히틀러의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전제적 지배를 비롯한 기존의 독재 체제는 소수가 다수를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식을 띠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도 각 사회체제에서 국가는 생산을 둘러싼 각종 수단을 장악한 소수계급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을 강제로 지배하는 성격을 지닌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노예제 사회는 소수의 노예주가, 봉건제 사회는 소수의 영주와 귀족이, 자본제 사회는 소수의 자본가가 대다수의 피지배 계급을 통히나는 것이다. 군대와 경찰이라는 강력한 폭력 수단에 의존한 채 말이다.

 

그런데 나치로 상징되는 파시즘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폭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기존의 전제 통치처럼 폭력으로 다수의 침묵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치는 선거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다수의 동의를 획득하여 권력을 얻었다. 이로써 전체주의라는 현대적 권위주의 통치체제를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다수 독일 국민은 왜 이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전쟁을 일으키도록 뒷받침하거나 방치했을까? 프롬은 독일 국민이 왜 "자유를 찾는 대신에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길"을 선택했는지 추적한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자연, 교회, 절대주의 국가의 지배를 극복하고 포기하고,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쿠데타 상황도 아니고 다수결에 의한 선출이라는 민주주의 절차가 보장된 상태였는데 말이다.

 

그 원인은 다가서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적 요인을 포함한 심리구조로 분석할 때 비로소 이해의 길이 열린다. 프롬은 인간의 마음에는 자유를 얻으려는 내적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는 본능적 욕구"가 동시에 깃들어 있다고 한다. 특히 근대 이후의 개인주의는 복종 욕구를 더욱 부채질 한다. 근대인과 현재인은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되어 '개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고립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가 확대된다.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대가족과 지역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철저히 고립된 개인을 확대 재생산했다. 거대한 국가체제와 생산체제 앞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무력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 거대한 괴물은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장벽이 되었고, 개인은 그저 생산성과 효율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도구로 추락했다. 현대인의 현실을 떠올리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직장에서 수많은 관계에 둘러싸여 있지만, 속내를 보면 냉정하고 치열한 경쟁의 들판에 서 있다. 이미 오랜 학교생활부터 인간관계는 경쟁으로 얼룩져왔다. 가정도 워낙 왜소한 핵가족 형태이기 때문에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다. 퇴근 후에 가정으로 돌아가더라도 고립된 섬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이러한 상태는 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속박에 놓이게 한다.

사람들은 고립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자유를 확대하는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진해서 복종함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개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강함 고독감이 귀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심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가 유럽에서는 히틀러와 나치즘에 복종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개인은 권력자의 외부적 억압에 의해 자유를 상실하는 시기를 지나, 무의식을 통해 굴절된 심리를 갖게 됨으로써 스스로 자유를 기피하게 되었다. 이는 나치즘을 성공에 이르게 하는 심리적 기반이었다. 당시의 독일 국민은 나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력한 저항도 하지 않고, 나치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실천의 적극적인 찬미자가 되지도 않은 많았던 이들이 나치 정권에 굴복했다.

 

이들 중에는 노동자들과 자유주의 경향의 세력이 많았다. 이들은 비교적 초기까지는 나치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조합이하는 광범위하고 탄탄한 조직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주로 내적인 피로와 체념의 상태"와 복종하려는 욕구가 맞물리며 나치 정권에 기꺼이 복종하게 되었다. 나치 세력은 이러한 심리에 근거하여 다수의 동의를 얻은 전체주의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의 독일인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 개인의 특징이며, 민주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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