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

나의 정체성을 누가 아는가?

by 탐탐이 2022. 11. 6.
반응형

■ 사회 속에서 인간은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무인도에 난파된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기에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규모가 크고 작은 공동체 규범 속박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아 형성은 개인적 과정이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성 발달과 맞물린다.

독일 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인간이 사회성을 발달시키며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을 추적한 대표적 심리학자다. 흔히 정체성으로 번역되는 아이덴티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사회성 발달과 정체성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규명한다. 정체성 혼란을 느낄 때 정체성을 의식한다 라는 명제는 그의 문제의식을 잘 함축하고 있고, 정체성은 흔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존재 의의를 인식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차별화되는, '나'를 '나'이게 하는 고유한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기도하다. 정체성은 타인과 뒤섞일 수 없는 구별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자신을 안다는 건 막연하기 짝이 엇는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부모나 친한 친구들이 말하는 내가 진정 자신일까? 하지만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는 바와 스스로 아는 바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통해 잘 알고 있다. 심지어 부모조차도 내 마음을 잘 모른다. 사춘기를 경과하면서 부모와 갈등을 빚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부모보다는 가까운 친구가 내 마음을 더 잘 헤아린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친구들에게는 아무런 허물없이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온전한 자기를 다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오랜 친구라 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친하기 때문에 자존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우리 안에는 잘난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유치하고 간사하고 심지어 비열한 면조차 도사리고 있다. 친구도 나의 반쪽만 알고 있을 뿐이니 그들이 아는 나를 나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내가 아는 내가 나일까? 앞에서 확인한 융과 그 제자들의 '그림자'에 대한 논의를 고려한다면 자신조차도 신뢰하기 어렵다. 그림자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어두운 속성이다. 이기심, 나태함, 무신경에서 음모, 책략, 부주의, 비겁함등에 이르기까지 워낙 격하고 어두운 속성이어서 평소에 자신의 일부라고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기 마련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자신하기도 어렵다.

 

이상으로 볼 때 정체성은 나와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 그리고 모두가 속해 있는 사회 환경에 의해 형성되며, 이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정체성이라는 규정에 값하기 위해서는 우연하게 튀어나오는 태도나 행위를 넘어서야 한다. 내적인 요소라 하더라도 상당한 경향성을 갖고 나타나야 하고,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정체성은 내가 나라고 인정하는 뚜렷한 경향성과 사회적 관계에서 인정되는 나의 특성이 종합적으로 관여한다. 그런데 그런 자신도 유아기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기 까지 내적인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 또한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나 사회 환경도 고정된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특히 몇 년이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사회라면 더욱 그러하다. 결국 성장하며 겪는 내적 변화와 사회 환경의 변화가 맞물리면 정체성은 유동적이 된다. 특히 변화의 폭이 큰 인생의 국면에서는 정체성이 더욱 요동친다. 에릭슨이 말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는 기존 정체성이 위기를 맞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평소 정체성에 무관심하던 이들도 이 위기의 순간에는 정체성을 강렬하게 의식하게 된다.

 

정체성 위기에서 정체성을 찾아보자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하는 상황을 구체적 사례로 살펴본다. 어떤 상황은 큰 충격을 주어 기존의 정체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만들곤 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전쟁은 늘 급작스러운 변동을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군인들이 겪는 고통과 수년에 걸친 후유증, 그로인한 정체성 혼란은 영화의 흔한 소재다.

 

그 서사의 뼈대는 대부분 이렇다. 먼저 신참 병사가 전투를 겪으면서 기존의 가치관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한다. 병사는 성장 과정에서 사정이나 학교에서 습득한 상식이나 도덕과는 전혀 다른 상황을 맞이한다. 인간의 생명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가장 혐오스러운 범죄로 배웠던 그의 상식과 도덕은 전쟁이라는 상황에는 적용되지 못한다. 훈련도 거치고, 전쟁에 나아가 목숨을 던질 각오도 하지만 막상 적을 죽여햐 할 때에는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게다가 애국심이나 사명감,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있으리라 기대했던 다른 병사와의 관계에서도 균열이 생긴다. 인간성이 무너지는 살육 현장에서 병사들의 성격은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현실에서 상명하복 체계는 폭력을 동반하고, 인권마저 빈번하게 무시당해 자신을 잃어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사회로 돌아와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귀환 병들은 또 다른 정신적 충격에 휘말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굴러가는 사회에 이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과 사회가 괴리되어 있는 느낌에 몸서리친다. 퇴역 후에 안정된 직장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웠지만 최소한의 생활 근거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 귀환병들은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한동안 정체성을 지배하던 애국심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절박한 과제로 대두되면서 다시 정체성 혼란에 빠진다.

 

전쟁을 앞둔 신병이나 복귀한 귀환병이 신경증에 시달린다는 연구 보고는 숱하게 많다. 정서적으로 적응을 못하는 단계를 넘어서 불면증과 우울증은 물론이고 자폐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너무나 많은 변화가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찾아왔기에 정신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아가 충격을 흡수하고 완충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이처럼 전쟁은 정체성 '혼란'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하지만 일상에서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느끼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학교라는 온실 안에 있다가 차갑고 무서운 경쟁 세계로 나간다. 곧 학교에서 습득한 관념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기에 괴리감을 느낀다. 당장 취업의 문턱을 넘기도 어려운 일이고, 설사 취업에 성공해도 그동안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관계와 문화 속에서 과거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기가 어렵다.

 

많은 여성의 경우, 결혼과 함께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 위기를 겪는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육아와 기사를 전담하는 전업주부가 되면 단절이 찾아온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과전혀 다른 경험을 맞닥뜨리면서 정체성의 공백 상태를 느낀다.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우울증을 토로하는 이유다.

퇴직에 의한 환경 변화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노년기도 정체성 단절을 초래한다. 오직 사회에서 요구되는 경쟁에만 몰두하며 생존 논리에 최대한 적응해왔지만, 일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직장의 위계질서에 최적화되어 있던 정체성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며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에릭슨에 의하면 정체성이 '혼란'을 맞이할 때야말로 정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의식할 수 있다. 그는 "정체성의 형성은 동일시의 유용성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기존 정체성이 타인이나 사회의 요구와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면서 형성되었다면, 그러한 동일시가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한다.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선택적 거부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도달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계기를 통해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게 된다.

 

 

반응형

댓글